장동민 씨, 개그에도 금기의 영역은 있습니다.

* 이 글은 2016년 4월 7일에 쓰였습니다.

 

개그는 금기의 영역을 넘나든다. 조롱할 수 없는 것을 조롱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며, 청중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것이 어떤 의미에선 개그의 본질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체면을 지키느라 혹은 상대를 배려하느라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개그우먼이나 개그맨이 대신할 때 웃음 짓는다.

 

누가 봐도 평균 이하라 할 <무한도전> 멤버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 사회적 통념상 여자가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되는 행동을 하는 개그우먼 장도연과 박나래, 상대를 불문하고 '버럭'하는 박명수, 장동민이 있기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개그는 이처럼 금기의 영역을 넘나든다. 하지만 차마 넘지 말아야 할 '마지노선'도 있다. 약자에 대한 조롱과 비하다. 약자는 조롱의 대상, 비하의 대상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얼마 전 장동민은 이 금기의 영역을 넘어섰다. 지난 3일 방영된 tvN의 한 꼭지 '충청도의 힘'을 통해서다.

 

지난해 장동민은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에서 여성혐오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당시 그는 "여자들은 멍청해서 머리가 남자한테 안 된다"라는 발언과 "참을 수 없는 건 처녀가 아닌 여자"라는 발언으로 문제가 됐다. 이러한 혐오 발언은 잘못된 것이었다.

 

당시 장동민은 그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정중히 사과하는 듯 했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지난해 그의 사과문을 보면 사과는 있지만,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엇을 반성했는지가 빠져 있었다. 뉘우침 없는 사과는 같은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지난 3일 그는 이를 증명했다.

 

[지난해 장동민의 사과 전문]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저 때문에 실망하고 불쾌해하셨을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드립니다. 제가 과거에 이야기했던 부분들이 다시 이야기가 돼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 이후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 노력을 많이 하고 여러분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답드리고자 합니다. 다시 한 번 사죄의 말씀드립니다. 너무나도 죄송하고 국민 여러분들에게 죄송합니다. 부모님에게도 죄송합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셨는데 큰 실망을 안겨드린 것 같아서 너무나도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실망시킨 부분을 열심히 살아가면서 보답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 tvN

 

코미디 빅리그, 충청도의 힘

이혼 가정 아동 조롱, 아동 성추행 개그화.

 

지난 3일 장동민은 tvN <코미디 빅리그>의 한 꼭지인 '충청도의 힘'에서 약자에 대한 조롱과 비하가 담긴 대본을 읽었다. 이혼 가정의 아동을 비하하고 조롱한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약자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것은 개그에서도 오롯이 '금기의 영역'으로 남아야 한다. 웃음을 선사하겠다는 이유로 사회적 약자를 더욱 궁색한 처지로 내모는 것은 용납돼선 안 될 행동이다.

 

'충청도의 힘'에는 6세, 7세 아동 역을 맡은 장동민과 조현민, 그리고 할머니 역을 맡은 황제성, 이혼 가정 아동 역을 맡은 양배차가 등장한다. 먼저 지난 방송에서 문제가 됐던 장면, 이혼 가정 아동에 대한 비하 발언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살펴보자.

 

[장면1]

양배차 : 이것 봐라, 우리 아빠가 또봇 사줬다. 너네는 이런 거 없지.

장동민 : 야, 오늘 며칠이냐? 25일이면 자축인묘.. 잉, 재네 아버지가 양육비 보냈나 보다.

조현민 : 어허, 듣겠다. 쟤 때문에 부모 갈라선 거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데, 얘 들어요.

장동민 : (양배차에게) 부러워서 그래. 너는 봐라, 얼마나 좋냐. 네 생일 때 선물을 양쪽에서 받잖아. 이거 재테크야. 재테크.

 

[장면2]

황제성 : 근데 너는 엄마 집으로 가냐, 아빠 집으로 가냐. 아버지가 서울에서 다른 여자랑 두 집 살림 차렸다고 소문이 아주 다 돌고 있어.

양배차 : 할머니한테서는 이상한 냄새 나거든요.

황제성 : 지 애비 닮아서 여자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네. 너 동생 생겼단다. 서울에.

 

해당 장면을 보면 '충청도의 힘'과 장동민, 황제성 등의 개그맨들이 이혼 가정 아동을 비하하고 조롱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그들은 아무런 죄 없는 이혼 가정의 아동, 어른들에 의해 상처받은 아동을 또 한번 조롱하고 비하했다. 이 때문에 이를 시청한 이혼 가정 아동들은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며, 일반 시민들은 이혼 가정 아동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됐을 수도 있다. 뿐만이 아니다. 이 프로그램은 '아동 성추행' 장면을 담기도 했다. 이 장면도 살펴보자.

 

[장면3]

장동민 : (벽 뒤에서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며) 할머니, 자~

황제성 : 어이구, 우리 동민이 장손 고추 따먹어보자. 호롤롤로~ 어이구 우리 장손, 할매 살겄다. 이 할매가 이제야 숨통이 트이네.

 

어떠한 사람들은 이런 장면들이 불편하지 않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일견 타당해보이기도 하지만, 개그를 개그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개그의 소재와 관련된 아픔이 없는 자들에 국한된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에 상처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나 아동 시절 성추행을 당한 기억이 있는 사람에겐 이들 장면이 자신의 지난 상처를 후벼파는 아픔으로 다가올 것이다. 상처받은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 '충청도의 힘'을 바라보면 이 프로그램이 문제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느낄 수 있을게다.

 

이번 방송이 문제가 되자 코미디 빅리그 측은 장동민을 '실드'치며, 그는 제작진이 준 대본을 읽었을 뿌닝라고 말했다.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코미디 빅리그에 있으며, 이에 대해 사과하고 '충청도의 힘'을 폐지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물론 코미디 빅리그 측의 잘못은 크다. 그러나 장동민 등의 개그맨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혐오 발언이 깃든 대본을 주며 프로그램을 제작하라 했다고 해서 아무런 생각 없이 이를 수용한 것 자체가 그의 편협한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죄 없는 약자 아닌 죄 있는 강자 비난했다면 어떠했을까?

 

사실 나는 그간 개그맨 장동민의 팬이었다. 그의 유머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가 우리 사회의 통념을 거부하고 약자를 짓누르는 시스템에 저항할 줄 아는 개그맨이라 믿어왔던 이유다. 그간 내가 봐온 장동민은 개그맨(우먼) 사이의 삐뚤어진 위계질서를 거부할 줄 알았고, 사석에서도 개그맨은 웃겨야 한다는 편견에 대항할 줄 알았다. '내가 술 살게, 노래 한 번 해봐'라는 선배의 말에 '제가 술은 사드릴게요. 노래 한 번 하시죠'라고 말할 줄 아는 그의 당당함이 좋았다.

 

그런 그가 지난해 여성 혐오 발언으로 논란이 됐을 때도 큰 실망감을 느꼈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또 한번 약자를 조롱하는 프로그램의 주연을 맡은 것은 정말이지 아쉽다. 그간 내가 생각했던 그의 이미지처럼 약자가 아닌, 비난 받아야 마땅할 강자를 조롱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면 어떠했을까.

 

ⓒ tvN

 

코미디 빅리그 측의 사과, 뉘우침이 없다.

 

'충청도의 힘'이 논란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tvN 제작직은 해당 프로그램을 방영한 데 대해 사과했다. 장동민 소속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들의 사과를 보면, 지난해 장동민이 발표했던 사과문과 똑 닮아 있다. 사과는 있지만, 무얼 잘못했는지, 무얼 뉘우쳤는지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제작진의 불찰이다. 불편함을 느꼈던 시청자들에게 사과한다. 죄송하다. 의도적으로 이혼 가정의 아이를 조롱, 비하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어른 같은 어린아이들의 상황을 만들다 보니 이렇게 됐다. 장동민, 조현민 등 연기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제작진이 더 깊게 생각하지 못한 잘못이다. 의도적으로 표현한 게 아니다. 옛날 할머니들이 했던 표현이고, 과거에 대한 우리의 추억을 살려보고자 했던 대사다. 이 장면에 불쾌감을 느끼셨던 분들께 죄송하다. 앞으로 아이디어나 대사 등에 신경 쓰겠다. 더 이상 논란이 없도록 하겠다. 다시 한 번 시청자들께 사과드린다" (코미디 빅리그 박성재 피디)

 

"본인이 사려깊게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성추행을 미화하려는 의도는 없었던 걸로 알고 있다. 작가와 상의한 대본대로 한 것이지 장동민 씨가 직접 애드리브를 한 건지 확인해봐야 한다" (장동민 소속사 측)

 

장동민은 지난해 이와 흡사한 사과를 한 후 1년 남짓 지난 시점에서 비슷한 잘못을 저질렀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당시 그의 사과문에 사과는 있의되, 뉘우침은 없었다. 뉘우침 없는 사과는 같은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고, 지난 3일 그는 충청도의 힘을 통해 이를 입증했다.

 

오늘 코미디 빅리그와 장동민 소속사의 사과문을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이들의 '망동'은 반복될 것이라는. 그들의 사과문에는 뉘우침 대신 논란을 잠재우려는 영혼없는 사과와 변명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머지 않은 날 이들은 또 한 번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다. 오늘 장동민이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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